최근 너무 일본 소설에 치우쳐져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피하다보니 첫 번째로 눈길이 간 작품이 바로 '향수'였다.
'좀머 씨 이야기'에서의 간결하면서도 동화같은 분위기의 느낌이 참 좋았었는데 이번 작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좀머 씨의 경우는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거리감을 유지한 상태에서 그의 심리를 짐작으로나마 들여다 보았다면 그르누이는 그 속의 깊은 곳까지 파헤져들어가 심리상태 하나하나를 자세히 옅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사실 처음에 눈길을 끌었던 것은 내용보다도 18세기의 유럽 풍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였는데 17, 18세기 경의 유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풍경들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체험이 너무 좋았다. (물론 풍경뿐만 아니라 그 냄새들까지도)
아기였던 그르누이가 자라서 이리저리 떠돌며 경험하는 에피소드들은 영락없는 동화속의 한 장면들이었고, 이름모를 붉은머리 소녀와의 짧은 만남은 그의 순수성이 드디어 절정으로 향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됐기에 책에서 가장 인상에 깊이 세겨졌다.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었던 후각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가질 수 없었던 그였기에 가장 악의 없이 순수한 캐릭터였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순수성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그의 성격을 전체 내용과 이질감없이 잘 마무리짓게한 마지막 장면 또한 '향수'가 완벽히 남을 수 있게 했다고 생각된다.
-풍문에 의하면 Nirvana의 In Utero앨범에서 Scentless Apprentice가 커트 코베인이 향수를 읽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nirvana에 관심이 있건없건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번 정도는 들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PREV